어떻게 기억될 것인가

2026-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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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메일이 하나 왔다. 2년 전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지원했다가 떨어진 회사로부터 포지션 제안이 온 것이었다. 나조차 잊고 있었는데, 원래 대학원을 오기 전에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했던 시절이 있었다. 여러가지 사건을 겪으면서 프론트엔드 업무는 놓아주고 커리어 전환을 하기로 결정하여 대학원으로 온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아무튼 지금은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제안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거절의 의사를 작성하여 답장을 보냈다. 기분이 뭔가 오묘했다. 그 시절에 그토록 간절하게 구직할 때는 이런 제안이 없었다가 2년이 지나고 커리어를 전환한 지금에서야 제안이 오니 말이다.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2년 전에 지원했던 수많은 회사 중에서도 유독 이 회사만큼은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일반적으로 회사가 불합격 통보 메일을 보낼 때는 미리 작성된 템플릿에다가 지원자 이름만 바꿔치기해서 자동발송을 돌리곤 한다.
그런데 이 회사는 달랐다. 시니어 개발자분이 개인 메일로 내게 직접 보내주셨다. 게다가 템플릿이 아닌 직접 작성하신 내용이었다. 연차가 맞지 않아서 불합격이기는 하지만 나의 이력서와 블로그를 인상 깊게 보았고 추후에 재지원을 해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커피챗을 제안해 주셨다. 나는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하여 흔쾌히 응했다.

당시 나는 수많은 탈락의 경험을 맛보고 있었다. 습관적으로 지원하고 템플릿된 탈락 메일을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감정이 점점 말라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불합격했음에도) 커피챗을 제안해주신 이 회사가 나에게도 신기한 경험이었다. 회사의 시니어 개발자가 따로 시간을 내서 커피챗을 한다는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텐데 이 분은 나에게 커피챗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셨나보다. 그 가치가 무엇인지 커피챗에서 물어보기로 했다.

커피챗 하기로 한 날, 회사 사무실에 도착해서 알려주신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메일을 보내주신 한 분만 나오시는 줄 알았는데 다른 시니어 개발자도 오셔서 총 세 분과 얘기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대단한 얘기를 한 것은 아니었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요즘 구직이 쉽지 않다는 약간의 푸념같은 걸 늘어놓았는데, 시니어분들은 지금 잘하고 있으니 너무 기죽지 말라고,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며 기운을 북돋아 주셨다.

그때의 기억은 현재까지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대략 한 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가는데 기분이 어딘가 묘해지는 게 있었다. 날 이렇게 좋게 봐주는 사람도 있었구나, 앞으로 조금만 더 열심히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리프레쉬되는 느낌이었다. 그동안은 회사로부터 일방적으로 평가받는 부담스러운 면접 자리에만 익숙했다. 하지만 그 커피챗에서는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 진솔한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고, 시니어분들도 내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셨다. 이 회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겨우 1시간 남짓한 대화 덕분에 지금까지도 좋은 인상으로 기억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제안 메일을 보내주신 시니어에게 2년 전의 나는 어떻게 기억된 사람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나를 표현할 수 있었던 공간은 지원서에 첨부했던 3장짜리 이력서 PDF 속 몇 글자와 블로그에 올린 포스팅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때의 긍정적인 기억을 아직까지도 간직하고 계신 덕분에 제안을 주셨던 것 같다. 그 안에서 나의 진심과 잠재력을 찾아주신, 그리고 본인의 시간까지 할애하여 자리를 마련해주신 분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비록 나의 커리어는 바뀌었지만 그분들이 내게서 본 가능성에 부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다른 사람(회사)을 어떻게 기억할지, 혹은 내가 어떻게 기억될 것인 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어떤 능력을 강조해야 오래 기억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이 문제의 정답은 잘 모르겠다.
다만 생성형AI가 득세하는 요즘 세상에서 능력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하는 일은 너무 쉬워졌다. 글이나 소스코드, 논문, 프로젝트는 얼마든지 그럴듯하게 꾸밀 수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진짜 가치는 이력서에 다 담기지 않을 것이다. 이를테면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바라볼 때 생각하는 고민의 깊이 같은 것이다. 텍스트만으로는 다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믿는 일이 AI가 대체하지 못할 영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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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헌 JuHeon

Stories only I can tell

M.S. student (Ajou Univ., Artificial Intelligence)

  • LLM Interpretability
  • LLM Safety & Alignment
  • Representation Engineering
  • Activation Steering
  • Human-Centered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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