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상반기 회고

2025-07-01


오랜만에

오랜만에 글을 쓴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개인적으로 생각을 정리하느라 블로그에 소홀해졌다. '많은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선 차차 설명할 것이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다. 9월부터 석사 과정을 시작할 예정이며, 분야는 LLM으로 큰 방향성을 정했다.

뜬금없는 전개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홧김에 내린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며, 긴 고심 끝에 내린 결정이다. 여러 요인을 고려해 보았을 때 도출해낸 최선의 안이라고 생각한다(최소한 지금까지는).
직장인 생활을 약 2년간 해오다가 다시 대학원으로 유턴하는 선택이 쉽지는 않았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어떤 근거로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생각을 풀어보고자 한다.

많은 일이 있었다

작년(2024년) 8월에 다니던 회사를 퇴사했다. 경영상의 이유로 사실상 비자발적인 퇴사였고 갑작스럽게 구직을 해야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묵혀둔 이력서를 고쳐쓰고 여러 회사에 서류를 돌렸다. 그렇다고 해서 조급한 마음에 무막정 아무 공고에 지원을 넣지는 않았다. 내 나름대로 회사와 프로덕트에 대한 기준선을 설정해놓고 이를 만족하는 회사들만 지원했다.

그렇게 8~9월간 약 20곳의 회사에 지원했고 서류를 합격한 곳은 7 곳이었다. 당시 채용 시장 상황이 위축되어 있음을 고려하면 나름 선방한 타율이라고 볼 수 있다. 서류 합격 이후에는 대부분 면접을 진행한다. 기술면접과 컬쳐핏 2번에 걸쳐서 진행하는 곳도 있고, 단 1번만에 끝나는 곳도 있다. 그리하여 최종 면접까지 보고 왔던 회사가 3곳이 있었다. 최종 면접은 웬만하면 합격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3곳 모두 불합격이었다.

여기서 1차로 멘탈이 나가는 시점이었다. 게다가 우연의 장난인건지 각기 다른 회사 3곳의 불합격 통보가 3일 연속으로 날아왔다. 이때가 9월 말이었다. 솔직히 3곳 중 최소 하나쯤은 붙을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었기에 충격이 더 컸던 것 같다.

그 후 3일동안 서류 지원도, 공부도 손을 대지 못했다. 일단 멘탈을 복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 내가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떨어진 거겠지. 이건 분명 다음에 더 좋은 회사를 가기 위한 큰 그림일거야. 하면서 스스로 자기합리화를 했다(난 이런걸 좀 잘하는 편이다).

그렇다고 자기합리화만 한 건 아니다. 나는 온라인으로 진행되는 면접에서는 녹음기를 틀어놓고, 면접이 끝나면 다시 들어보면서 셀프 피드백을 한다. 오프라인 면접에서는 면접이 끝나자마자 받았던 질문들과 내가 했던 대답들을 기록해 놓는다. 그리곤 다음번에는 어떻게 대답하는게 좋을지 모범답안을 다시 만들어보곤 한다.

왜 떨어졌는지에 대해 어느정도 짐작이 가는 면접도 있었다. 회사에서는 5년이상의 고연차 경력자를 원하는데 나는 그에 못미치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제대로 못했던 면접도 있었다. 아무튼 세상에 이유없이 떨어뜨리는 면접은 없다.
일주일이 지나자 너덜너덜해졌던 멘탈이 어느정도 복구되었고, 셀프 피드백을 통해 나는 더 강해졌으리라 믿고 있었다. 다시 이력서를 고치고 공부를 하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 이후로는 회사 지원에 대한 기준선을 조금 낮춰서 지원 횟수를 늘렸다. 너무 나만의 기준선을 엄격하게 두기보단, 표본의 개수를 늘려보면서 어떠한 회사와 공고에서 합격률이 높은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 그렇게 10월부터 12월까지 30개가 넘는 공고에 지원했다. 합격률은 지난번과 비슷했다. 피드백 과정을 반복하다보니 확실히 지난번보다 면접에서의 자신감은 붙었고, 결국 2곳으로부터 최종합격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여기서도 시련은 끊이질 않았다.

우선 한 곳은 최종합격 통보를 받고 3일이 지난 뒤, 불합격으로 결과가 번복되었다. 이 소식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져 회사로부터 자초지종을 설명해달라고 했지만, '내부 협의에 따른 결과'라는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그리고 다른 한 곳은 연봉협상 과정에서 이견의 너무 커서 결국 결렬되었다.

이로인해 2차로 멘탈이 나가게 되었다. 이제는 내 능력과 노력의 탓이 아닌 외부 상황으로 인해 벌어진 사태였기에 1차 때보다도 더 큰 타격이었다. 이 시점을 계기로 구직을 위한 의지가 대부분 꺾이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시장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고 문은 더 좁아지고 있었다. 무기력해진 내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고 싶었다. 애써 괜찮은 척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지원하려 했는데 이번에는 복구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예감이 들었다. 당시에는 인정하진 않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번아웃이 왔었다. 이때가 12월 말이었다.

이대로는 안된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커리어뿐만 아니라 정신건강까지 망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구전략이 필요했다. 일단은 쉴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기한을 정하려 하지도 않고 멘탈이 복구될 때까지 무작정 쉬기로 했다.

그렇게 한 열흘정도 쉰 것 같다. 날짜는 어느새 해가 지나 2025년이 되었다. 멘탈이 복구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채용공고를 살펴보면서 몇 개 지원을 해보기도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제는 너무 많이 떨어지고 멘탈도 두 번이나 깨져서인지 별 타격도 없었다. 그냥 아무 회사에 들어가서 시간 때우다가, 시장 상황이 나아지면 이직하는게 나을지도 고민해보기도 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리고 2,3년 뒤의 웹 프론트엔드 시장이 어떨지를 생각해보았다. 2024년부터 Cursor를 비롯한 코딩을 위한 생성형 AI 기술의 성능이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제는 단순 구현을 위한 코딩만 놓고보면 나보다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몇 년이 더 지나면 지금보다도 AI는 훨씬 더 잘하게 될 것이고 대부분의 업무를 사람 대신 AI가 대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웹 프론트엔드 업무의 대부분은 기존에 작성된 코드를 약간만 각색하여 새로운 페이지를 만드는 일이고, 이 업무는 AI가 가장 잘 하는 분야이다. 그럼 나는 AI는 잘 하지 못하는 분야를 강점으로 내세워야 경쟁력이 생긴다.

점점 내 앞으로의 커리어에 대한 생각의 방향이 낙관론에서 비관론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 분야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프론트엔드 개발자는 전망이 없다'는 말을 하려는게 아니다. 내가 개발자 커리어에 진입하는 시점에서 앞으로 투자(시간/공부)대비 결과(희귀성/유망성/보상)을 계산했을 때, 프론트엔드보다는 다른 분야가 더 효율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프론트엔드 분야는 지난 몇 년간 공급은 지나치게 과잉되었고 수요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앞으로 저연차 개발자가 차지하는 피라미드의 밑부분은 AI가 대체하여 설 자리를 잃게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대학원 진학

그렇다면 위의 계산 공식에 의거하면 어떤 분야에 투자하는게 가장 효율적일까를 고민해보았다. 만만한건 백엔드나 모바일 분야기는 하나, 이 또한 AI의 발전으로 인해 언젠가는 대체될 것 같다는 맥락은 동일했다. 희귀성과 유망성에 걸맞는 분야를 찾는다면 AI 개발분야가 1순위다.

여기서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었는데 전통적인 방식은 대학원을 가는 것이고, 다른 방안은 부트캠프를 가는 것이었다. 대학원은 최소 2년이라는 시간과 논문 작성의 측면에서 투자해야할 인풋이 크지만 그만큼 확실한 대우를 보장받는다. 반면 부트캠프는 평균적으로 6개월 과정으로, 논문 없이 프로젝트 성격으로 진행되기에 인풋대비 결과를 더 바르게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처음에는 학업을 위한 공부를 더 해야한다는 점에 부담감이 있어서 대학원을 선택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처럼 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두려운 선택지는 외면하고 쉬운 길을 택했던 경향이 있다. 하지만 기왕 다른 분야로 도전할거라면 처음부터 제대로 시작하는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려운 길을 선택해보기로 했다. 때로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관성을 버리고 새로운 길을 선택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법이다.

프론트 개발자로 2년동안 배운 것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다.

웹 프론트엔드 개발자로서 2년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커리어 쌓아왔는데, 이제와서 다른 분야(AI)로 틀기엔 지금까지 해놓은게 너무 아깝지 않나?

사실 이 질문은 내가 스스로에게 던진 것이다. 위 질문을 스스로에게 100번쯤 되물어 보았다. 대학원에 진학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지금까지 (프론트엔드 분야에서) 해놓은게 아까워서 결정을 주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내가 2년동안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해 곰곰이 되돌아보았다.

나는 지금까지 2곳의 회사에서 일했다. 각각 1년씩 총 2년의 경력인 셈이다. 그동안 한 번의 이직을 경험했고, 이력서를 30번 넘게 고쳐썼고, 지원한 채용공고가 150개는 족히 되며 불합격은 100번 넘게 받아보고, 면접은 23번 봤다. 새로운 직장 동료 수십명이 카톡 친구창에 추가됐고, 다른 회사로 파견 근무도 가보고, 코드리뷰를 통해 내 코드를 다른 사람에게 설명해보고, 마감기간을 지키기 위해 밤 10시가 넘도록 야근도 해보고, 그것도 모자라 집에서 새벽이 되도록 작업을 해본 경험도 있었다.

이처럼 내가 2년동안 배운건 비단 프론트엔트 기술만이 아니다. 학교에서 벗어나 회사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내 생각을 남들에게 표현하는 방법, 여러 사람이 모인 '회사'집단이 하나의 지향점을 향해 달려가기 위해서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업무를 대하는 방식과 여러 사람들과 협업하는 방법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또한 이전에는 개발외에는 문외한이었던 내가 회사를 다니며 기획,디자인,경영,마케팅,HR 등 각기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직간접적으로 만나며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드려고 했다. 대화를 통해 개발 외 분야에서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고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얘기를 들으면서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다른 세계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싶었다.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경험은 없다고 생각한다. 일의 말미가 잘못된다 하더라도 모든 경험은 나름대로의 교훈을 준다. 내가 2년동안 배운건 더 넓은 세상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과의 경험, 회사 생활과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 그리고 내 생각을 남들에게 표현하는 법이다. 분야가 바뀐다고 한들 여기서 얻은 경험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이 경험은 내게 소중한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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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주헌 Neon

개발 관련 내용들과 일상에서 느끼는 점들을 남기고 있어요. 흔하게 널린 글보다는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남기려 하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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